7편: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단정한 올림머리와 사교계의 예절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과잉된 헤어스타일이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격변과 함께 무너져 내린 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절제’, ‘도덕’, ‘단정함’이 최고의 가치로 떠오르면서 헤어스타일은 다시 정갈하고 품위 있는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오늘은 빅토리아 시대의 헤어스타일이 어떻게 여성들의 일상 예절과 결합했는지, 그리고 그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도구들이 사용되었는지 살펴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미학: 정숙함의 재발견]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엄격한 사회적 규범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여성의 영광’으로 간주되었으나, 이는 동시에 외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은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땋아 머리 뒤쪽으로 낮게 말아 올리는 ‘낮은 번(Low Bun)’ 스타일을 선호했습니다.

이 스타일은 목선을 강조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어, 당시 강조되던 가정적인 여성상과 완벽하게 부합했습니다. 귀족 사회에서는 머리 옆부분을 부드러운 컬로 만들어 얼굴을 감싸는 스타일도 유행했는데, 이는 과하지 않은 우아함을 표현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헤어스타일은 로코코 시대처럼 머리 위에 정원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머리카락을 얼마나 윤기 나고 정갈하게 빗어 넘기느냐에 집중했습니다.

[사교계의 예절과 헤어 케어 도구]

당시 여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머리카락의 윤기’였습니다. 화려한 장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머릿결의 건강함만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밤 100번씩 빗질을 하는 것이 일종의 의무적인 미용 루틴이었습니다. 멧돼지 털로 만든 빗(브리스틀 브러시)을 사용해 두피의 기름을 머리카락 끝까지 고르게 퍼뜨리는 방식이었죠.

이 시기에는 ‘헤어 오일’ 대신 ‘포마드’가 정착되었는데, 이는 머리카락을 고정하고 윤기를 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포마드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베개나 가구에 묻어나는 일이 잦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빅토리아 시대의 고급 침실에는 ‘안티마카사르(Antimacassar)’라는 작은 천을 의자나 소파 등받이에 덧대어 포마드로부터 가구를 보호하는 관습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는 ‘윤기 나는 머릿결’ 관리법]

빅토리아 시대의 100번 빗질은 현대 헤어 케어 측면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두피의 천연 피지를 모발 전체로 고르게 분산시켜 보호막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매일 건강한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팁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올바른 빗질 순서: 머리카락 끝의 엉킴을 먼저 풀어준 뒤, 두피에서 아래쪽으로 부드럽게 빗질하세요. 무작정 두피부터 빗으면 모발이 엉켜 끊어질 수 있습니다.

  2. 빗의 선택: 두피가 예민하다면 끝이 둥글게 마감된 빗이나 천연 모 브러시를 선택하세요. 플라스틱 빗은 정전기를 유발해 모발 큐티클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3. 샴푸 전 빗질: 샴푸 전에 가볍게 빗질을 하면 모발의 먼지가 제거되고 샴푸가 두피에 더 잘 닿아 세정력이 높아집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머리를 가꾸며 보여주었던 인내심과 세심함은, 오늘날 우리가 바쁜 아침 시간에 놓치고 있는 ‘머리카락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핵심 요약]

  • 빅토리아 시대의 헤어스타일은 정숙함과 단정함을 중시하며, 낮게 묶는 번 스타일이 주를 이루었다.

  • 100번의 빗질과 같은 정성스러운 관리 루틴이 강조되었으며, 이는 모발의 천연 보호막을 형성하는 건강한 관습이었다.

  • 현대에도 올바른 빗질 습관과 도구 선택만으로 모발 건강을 크게 개선할 수 있으며, 특히 샴푸 전 빗질은 세정 효과를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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